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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mas 2018 Sermon

As Luke chapter 2 opens
the world is continuing pretty much as it always has.
마가복음 2장에서 보듯 세상은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계속 되고 있습니다.

Caesar Augustus has called a census of the entire empire,
keen to know what taxes he’ll be able to extract from the population.
황제 시저 아우구스투스는 국민들로부터 얼마만큼의 세금을 걷을 수 있는지 알고 싶어서 전 제국의 인구조사를 실시했습니다.
Money and politics are in focus.
돈과 정치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지요.
We hear that Quirinius is the governor of Syria.
우리는 구레뇨가 시리아의 총독이라는 것을 들었습니다.
He had been appointed by Augustus as a military governor
to suppress a long-running rebellion in the region.
그는 오랫동안 계속 되어 온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아우구스투스에 의해 임명 되었습니다.
So conflict and military power are in focus.
그래서 갈등과 군사력이 집중 되어 있었습니다.
But while human affairs continue to unfold,
divine initiatives are also operating.
하지만 사람들의 사건 사고가 계속 펼쳐지는 동안, 신의 계획 또한 진행 되고 있었습니다.
To an ordinary couple who had to travel at an inconvenient time
a baby is born and placed in a feeding trough.
이런 불편한 때에 여행을 해야 했던 평범한 커플에게 구유에서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And in this event
love, hope and redemption come into focus.
이 사건은 사랑, 희망 그리고 구원이 집중 된 사건이었습니다.

One of the things I am interested in today
is what we see; what we notice.
오늘 날 제가 관심 있는 것들 중 하나는 우리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인식하고 있는지 입니다.
Because I think the Christmas story
invites us to see our world with new eyes.
왜냐하면 저는 이 성탄이야기가 우리의 세상을 새로운 눈으로 보도록 초대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_______________
When I was in Year 9 at school,
we had a casual teacher take a history lesson.
제가 9학년때 캐주얼 선생님으로부터 역사 수업을 받았습니다.
It felt like a lesson that he had taught many times before –
he sat on a desk and asked us to identify significant
discoveries, events and moments that had shaped human history.
선생님은 이 수업을 많이 가르쳤던 것 처럼 책상에 앉아 우리에게 인류 역사를 형성케한 중요한 발견들, 사건들, 순간들을 찾아보라고 했었습니다.

There was something in his manner that was treating us
as adults and we responded pretty well for a bunch of Year 9 boys.
우리를 성인으로 대하셨지만 우리는 9학년 남자 아이들 치고는 꽤나 잘 따랐습니다.
Today they would call us “engaged learners”.
아마 요즘 시대로 말하면 “열공학생”이라고 말하겠지요.

On a timeline on the board we identified the discovery of fire,
the development of agriculture, industrialisation,
major conflicts like the World Wars, and so on.
칠판의 연대표에 우리는 불의 발견, 농업의 발달, 공업화, 세계전쟁 그리고 주요분쟁 등을 적어놨습니다.
Then he prompted us about something significant
in a gap on the timeline between about 300BC and 200AD.
그러자 선생님은 BC300년과 AD200년 사이에 간격을 두고 뭔가 중요한 게 있다고 말했습니다.
We were all thinking hard. 우리는 열심히 생각했습니다.
As a young Christian I was wondering about the life of Jesus.
젊은 기독교인으로서 저는 예수님의 삶이 궁금했습니다.
I knew Jesus was important to me
but could it be said that he made any impact on human history?
저는 예수님이 저에겐 중요한 분이신 걸 알았지만 인류 역사에 어떤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을까요?
I wondered how I could justify my answer
if I was game enough to voice it.
저는 제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게임이라면 어떻게 나의 대답을 정당화 할 수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Eventually someone ventured what I had been thinking:
“The birth of Christ, Sir?”
결국 누군가는 내가 생각 하고 있던 것을 모험하듯
“예수의 탄생” 일까요 라고 물었습니다.
I had the sense everyone was keen to hear this teacher’s view
on the importance of Jesus in the scheme of human history.
나는 모두가 인류 역사에서 예수님의 중요성에 대해 듣고 싶어 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No, I don’t think so” the teacher responded
and he dismissed the idea that Jesus had offered anything significant
to humanity, before adding to the timeline, I think, some advance of the Roman Empire.
그러나 선생님은 “난 그리 생각 하지 않는다”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인류를 위해 무언가 의미 있는 것을 주셨다는 생각을 로마 제국의 진보에 의해 버렸고 그렇게 연대표에 더해지지 않았습니다.
_______________
What do we see? 우리는 뭘 보나요?
What do we notice? 우리는 뭘 느끼나요?

In an objective sense
객관적인 시선으로 보자면
perhaps my history teacher was right …
제 역사 선생님이 맞았을지도 모르겠군요
On the scale of impact on the world, in one way,
전 세계에 끼쳤던 영향을 토대로 보자면, 한편으로는,
we could say Jesus didn’t change much at all.
예수님께서는 그 어떠한 것도 바꾸지 않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Though there were expectations that Jesus would
inaugurate a whole new era by
“casting the mighty down from their thrones and lifting up the lowly”
at the end of Jesus’ ministry, and right through till today
예수님의 사역을 끝으로 오늘 이 날까지 예수님께서 친히
“높은 자들을 낮추시고 낮은 자들을 높이시며”
신기원을 개시하실 것이라는 기대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the Caesars are still ensconced in power,
wealth and material possessions remain our gods,
and conflicts, small and large, continue almost unabated.
군주들은 여전히 막강한 권력을 쥐고 있고,
부와 물질적인 소유들이 우리의 우상이 되고,
작고 큰 갈등과 충동들이 조금도 누그러지지 않고 계속되고 있습니다.

So it is true to say that not everything changed
in the way that many expected.
그럼 결국 많은 이들이 기대했던 바처럼 모든 것이 변하지는 않았다는 생각은 맞는 것일까요?
And yet I invite you to look again; to see afresh.
그럼에도 저는 여러분들이 다시 들여다 보시길 원합니다, 새로운 관점으로요.
Because as Luke shows in his gospel,
things do change with Jesus.
누가가 그의 복음을 통해 전했듯이
예수님 안에서는 많은 것들이 바뀝니다.

Firstly, all people are embraced with compassion and love.
첫째로는, 모든 사람들이 연민과 사랑으로 안기어 있습니다.
● Lepers… are touched;
나병환자들이 감동을 받고
● the unworthy… are invited to eat with the respectable;
자격 없는 자들이 존경 받는 자들에게 함께 먹고 마시자 초청을 받고
● despised enemies, like Samaritans… become the heroes of stories;
사마리아인들과 같은 괄시 받는 적들이 이야기의 히어로가 되고
● women are welcomed as equal disciples
not relegated to hospitality roles;
여성들이 집안 일로 밀려나지 않고 동등한 제자로 환영 받고
● children – in those days, treated like nobodies –
are held up as examples of greatness;
아이들도 - 그 시대에는 없는 사람으로 취급 받았던 - 위대함의 예시로 쓰이고
● hated tax collectors go home justified
while respectable religious leaders are found wanting.
세리들이 정당함을 인정 받고 집에 돌아감과 동시에 훌륭한 리더들을 찾는 공고가 떴습니다.
Jesus is completely shaking up the way individuals are treated
in order to herald that each person is loved and valued by God.
And should be loved and valued by us.
예수께서는 개개인이 받던 대우들을 완전히 흔들어 놓으시며 각 사람은 전부 하나님 안에서 귀중하고 사랑 받는 존재들임을 알리셨습니다.
And secondly, cultural assumptions and beliefs –
those attitudes we imbibe with our mother’s milk,
that maintain things as they’ve always been –
두번째로는, 늘 주변의 모든 것들을 한결같이 유지 시키고 당연시 여겨졌던 문화적 추정들과 신념들이,
those attitudes are prodded and poked
and tested and challenged by Jesus,
especially in his parables.
그리고 그 사고방식들이 예수님으로 인해서 찔림 받고 시험에 들고 자극 당했습니다.
● What if the poor – like Lazarus the beggar –
receive a free pass to paradise?
거지 나사로와 같이 가난한 자들이 천국으로 가는 프리패스를 받는다면요?
● And likewise, what if the rich struggle to make it?
이와 반대로, 부자들은 천국에 들어가기가 너무 어렵다면요?
● What if you gain what is really important in life
by letting go of the things you have always valued?
가장 귀중하게 여겼던 것을 내려 놓았을 때 삶에 진정으로 중요한 것을 얻게 된다면요?
● What if those who are always first, best and favoured in this world
find themselves at the end of God’s priority line?
이 세상에선 늘 우선시 되고, 특혜 받고 선호 받았던 자들이 자신들이 하나님의 우선권에서 맨 마지막에 놓여져 있는 걸 알게 된다면요?
● What if real blessing comes from inviting to our celebrations those who can’t return the favour?
만약 참된 축복이 인정 받을 만한 것을 돌려주지 못하는 자들을 기념일에 초대할 때 오는 것이라면요?
With Jesus, people are treated differently
and assumptions about getting on in life are turned upside down.
And yes, that does make possible a whole new world.
As I read during the week,
예수님 안에서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와는 다르게 여김을 받고, 우리의 예측들과 세상의 흐름과는 거꾸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네, 그건 분명히 새로운 세상을 열게 됩니다.
제가 이번 주에 읽으면서,

“[With Jesus,] Caesar will not be chased out of Rome
but the foundational social conventions that ensure his supremacy have lost their moorings.
Once that happens, change can occur any place.”
“(예수님과 함께라면,) 황제는 로마에서 쫓겨나지 않을 것이고, 그의 패권을 책임져온 기본적인 사회적 관습은 전부 힘을 잃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변화는 언제 어디서나 일어날 것이다.”
And so it shouldn’t surprise us that the Christmas story
has the same subversive themes.
그래서 크리스마스 이야기들이 채제 전복적이라는 점은 그리 놀라울 게 없습니다.
The divine promises come to humble, faithful people
not to national leaders with A-type personalities.
거룩한 그 분의 약속들은 겸손하고 충실한 사람들의 것이지, 국가의 리더들이나 A급 인격을 가진 사람들의 것이 아닙니다.
The angels appear to disdained shepherds
not to those on the celebrity lists.
천사들은 무시 받는 목자들 앞에 나타나지, 유명인사 목록에 적힌 자들에게 나타나지 않습니다.
And the baby is laid in a feeding trough
not in a palace nursery.
아기들은 구유에 눕혀지지, 대저택의 놀이방에 눕혀지지 않습니다.

The quiet revolution of God has begun.
하나님의 조용한 혁명은 이미 시작됐습니다.
It won’t be ushered in by deposing national rulers;
it won’t come through violence or military power.
국가의 통치자들을 물러나게 하며 시작하지 않습니다,
또는 폭력적으로나 물리적으로 도입 되지 않을 것입니다.
Instead the quiet revolution begins
by God taking flesh to show us an alternate path.
대신에, 조용한 혁명은 하나님께서 육체를 입으시고 우리에게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을 보이시며 시작되었습니다.
It comes through Jesus questioning our assumptions
and teaching us how to treat each other.
예수님께서 우리의 추정들을 심문하시고, 서로를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 가르쳐 주심으로 우리 안에 들어옵니다.
It arrives with changed relationships,
and a willingness to see each other as God sees us.
변화된 관계들로 채워주시고, 기꺼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시듯 서로를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을 얻기 원합니다.
Most will reject all this as far too unsophisticated,
and like my history teacher,
will see nothing special in this first century Rabbi
nor view his birth as remarkable.
많은 자들이 이 것들을 너무나도 거칠고 투박하게 거부할 것이고,
저의 역사 선생님처럼 우리는 일세기의 라비를 전혀 특별할 것 없이 바라볼 것이고,
그의 탄생 또한 놀랄 만한 무언가로 인지하지 못할 것입니다.
But some of us will see something else.
그러나 몇몇의 우리는 다른 무언가를 보게 되겠죠.
We recognize a defining moment in the ministry of Jesus;
and sense the Sacred in his words.
우리는 예수님의 사역의 본질적인 의미를 규정할 수 있게 될 것이고, 그 분의 말씀의 신성함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And so we worship.
그래서 우리는 예배합니다.
We celebrate his birth.
우리는 그 분의 탄생을 축하합니다.
We follow his teachings.
우리는 그 분의 말씀을 따라 행합니다.
And by his Spirit within,
그리고 그의 영혼으로
we commit ourselves to living by his values
우리는 우리 자신을 그 분께 맡기고 그 분의 가치관을 따라 살기를 소원합니다.
and changing the world – or at least our little part of it –
one action at a time, one person at a time, one day at a time.
또한 세상을 변화 시키길 원하고 - 혹은 우리 안의 작은 일부분이라도 - 그렇게 하나의 행동으로, 한 번에 한 사람씩, 하루에 한 번씩 변화됩니다.

The world will continue on as it always has:
chasing power and money;
finding new reasons for conflicts and disputes.
이 세상은 지금껏 쭉 그래왔던 것처럼 흘러 갈 것입니다:
권력과 돈을 쫓고, 갈등과 분쟁을 위한 새로운 화제거리를 계속해서 찾아낼 것입니다.
But God is also active in our world
for other, more divine, more reconciling purposes.
하지만 동시에 하나님께서도 이 세상 가운데 일하실 것입니다.
보다 더 훌륭하고, 조화로운 목적들을 위해서 말입니다.
Will we see?
우리는 볼 수 있을까요?
Will we notice Christ at work?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일하심을 알아챌 수 있을까요?
Will we join the quiet revolution of God?
우리는 그 분의 조용한 혁명에 함께할 수 있을까요?